은현교회 강석형 담임목사를 소개합니다

강석형 담임목사 사진

교회가 이땅의 소망입니다

강석형 목사는 성경 말씀에 충실한 복음적인 설교자요,
한국 교회와 은현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세우는 목회자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세우는데 헌신된 선교학자요
영적인 통찰력으로 성경을 보는 눈을 열어주는 영적인 멘토 입니다.

듬직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큰 형님 같고, 큰 오빠 같고, 두목(?) 같은
선하고 커다란 눈을 가진, 주님이 친히 인도하시고 목회하시는 교회에서
섬김의 종으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강석형 목사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언제 예수님을 알게 되었나요?

모태 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고 학년 때는 물론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기도를 했었지만 복음을 깨닫게 된 것은 군대에 가서 입니다. 최전방 보병부대에서 군 생활을 절반 가까이 했을 무렵 대대 군종병으로 가게 되었는데, 연말에 군종부에서 숙식하면서 고참 군종으로부터 성경 말씀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복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무엇인가가 제 안에 들어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때부터 성경을 읽을 때 성경 말씀이 이해가 되고 너무나 좋았습니다. 다윗이 고백한 대로 말씀이 꿀처럼 단 체험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제대 후에 1학년 2학기로 복학했는데, 마침 과 대표가 고등학교 선배였습니다. 그분 소개로 CCC(대학생 선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신앙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았습니다. 주님의 섭리라고 봅니다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셨나요.

복학 후 고시 공부를 했었는데 회의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2학년 때 어머니 생신을 맞아 당시 자주 만나던 여 전도사님을 모시고 집에서 기도 모임을 가졌었는데, 그때 강한 소명이 왔습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공부하던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졸업할 무렵 막상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 싫어졌습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비즈니스맨이 되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한 2달 정도 입시 준비를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입시에 떨어지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데 남들은 그렇게 어렵다던(?) 신학대학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러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다음 주부터 히브리어 강좌가 시작된다고 통보하더군요. '어어' 하다가 그냥 입학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제 손을 잡아 이끄신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되세요.

예수님처럼 33년을 홀로 지냈지만, 이 후 더 이상 혼자 살기 힘들어 34세 때인 90년에 반쪽으로 택한 아내는 목사님 딸이고,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이 목사님 딸과 아들입니다. 그래서 간혹 저와 생각이 다를 때가 많지요. 곧 저는 좀 자유로운데, 아내를 비롯해서 아들과 딸은 자신들이 목사님 자녀라는 것을 상당히 의식하고 살더군요. 저는 평신도 시절 교회 생활을 자유롭게 했는데, 저희 집 식구들은 교인들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에요. 어린 시절 제가 만났던 목사님 자녀들이 뭔가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 아이들이 그러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목사님에게 영향을 주신 분들이 있다면.

학생 시절 CCC활동을 줄곧 했기 때문에 당시 대표였던 김준곤 목사님의 복음 메시지에 많이 영향을 받았고요. CCC 설립자이신 고 빌 브라이트 박사의 영향도 많이 받았지요. 청년 시기에는 안창호, 함석현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그분들에게서도 민족의식 형성에 영향을 받았지요. 또 책을 통해서는 영국의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 영향을 받았지요. 특히 존 스토트 박사 생전에 그분이 목회하던 런던의 올 소울즈 교회(All souls Church)에 가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 한국에 돌아가 예배를 드린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는 감동과 은혜를 받았었지요.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존 스토트 박사가 생전에 운영하시던 연구소(The London Institute for Contemporary Christianity)에서 1년간 공부하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못한 것이 좀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해서 연구소 서가에 있는 책들과 판매대에 있는 책들의 주제가 매우 광범위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저도 할 수 있으면 신학 외에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주제별로 독서를 지속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학자적인 식견을 갖춘 Dr. 존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주어진 목회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셨던 많은 목사님들이 다 저의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육을 받으셨나요.

원래 저는 이과생이었고, 대학 진학할 당시에는 의과대학을 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목표를 너무 높이 잡아서 실패하고, 재수하면서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의사가 싫어서(당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몰라요. 후에 목사가 된 후. 의사였으면 선교사로 나가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걸 하는 후회가 일어나더군요) 문과로 돌려서 진학했지요. 그러나 이과에서 문과로 돌렸다가 문과 쪽 학습량이 부족해서 결국은 원하는 곳에 진학을 하지 못해서 저의 삶에 큰 상처로 남았어요. 그러나 그 상처 덕분에 어쩌면 인생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문과로 전과한 이유는 법대를 가서 세상을 바꾸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청소년기와 청년 시절 안창호와 함석헌 선생의 책과 사회학쪽 책들을 읽으면서 사회의식이 조금 생겼었거든요. 그런데 최종 결정은 아무래도 진로가 넓은 상대가 좋을 것 같아서 무역학과를 가서 4년 동안 돈 버는 방법과 돈의 흐름에 대해서만 공부했지요. 당시 회계학을 공부해서 회계 장부도 볼 줄 알지요. 이 능력이 은현교회로 부임해서 초기에 교회의 질서를 세우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해서 공부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부목사로 약 4년간 두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영국에 가서 버밍험 대학교(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선교학(Between Mission Policy and Mission Ideology: The Great Revival Movement of 1907 in Korean Protestantism)으로 ph.D를 받았어요. 전공은 선교 역사이고요. 지도 교수(Werner Ustorf)의 전공이 역사이기도 하고, 또 제가 역사를 좋아해서... 선교는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역사를 택했지요. 주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부흥운동과 선교의 상관관계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자료를 찾으러 미국에 가서 한 달 간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보스톤,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 장로교 고문서 도서관에서 연구했지요. 그때 세계적인 대학의 도서관 한 귀퉁이에 앉아 공부하는 복을 누렸지요

은현교회에 오기 전까지 어디서 사역을 하셨나요.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12월 군대에서 군종병으로 있을 때이고요. 대학 시절에는 CCC에서 순장을 하면서 제자들을 양육했고, 신학교 들어가서는 이문동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육 전도사, 졸업 후에는 금호중앙교회에서 초등부, 청년부 교육 전도사로, 참 이때는 1부 성가대 지휘까지 했었어요. 그리고 보성 여자고등학교에서 성경교사로 1년 반 사역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목사 안수 받은 후에는 신일교회와 새문안교회에서 부목사로 도합 4년간 사역했어요. 그리고 영국으로 유학 가서 버밍엄 한인 교회에서 3년간 학업을 하면서 담임을 맡았지요.이때 한 20여명 모이던 교회가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유학생이 많아진 이유도 있지만, 100명 정도 모이는 당시 영국에 있는 한인교회 다섯 손가락에 드는 교회로 성장했지요. 그리고 1998년 7월 학위 받고 국내로 들어와서 신학대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하다가 은현교회로 2000년 5월 첫 주일에 부임했지요.

은현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가지신 비전은 무엇인가요.

처음 부임했을 때 교회가 몹시 혼란스러운 상태였기 때문에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해서 원칙대로 했지요. 주일예배는 물론 새벽기도회도 365일 인도하고, 수요일 저녁, 금요일 철야기도 등 모든 예배와 기도회를 혼자서 인도하고, 일일이 심방하면서 교적부도 만들었지요. 갈등도 봉합해야하고, 무척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40대 중반이어서 건강이 뒷받침을 해 주어서 감당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살이 많이 빠지더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제가 가진 특별한 비전보다는 교회는 주님의 비전대로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생각보다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기 위해 힘썼고, 주님의 비전대로 교회를 이끌고 가려고 했지요. 지금도 교회는 주님께서 성경에서 보여주신 원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믿어요. 말씀대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드리는 교회를 세우고 싶은 것이 저의 꿈입니다. 훗날 우리 교회 성도들이 주님 앞에 갔을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말씀을 듣도록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